건설 관련 세미나에 사람이 많이 몰리는 주제는 단연코 건설·부동산 시장 전망이다. 산업체는 시장 성장세에 관심이 크고 시민은 집 장만이나 재산 증식에 관심이 높다. 산업체와 시민이 가장 많이 몰리는 세미나지만 참석자들의 만족도는 그다지 높지 않은 편이다. 부동산 시장과 가격 등락을 예측하는 것은 통계보다 주변 환경에 좌우되는 특징이 있다. 어느 부동산 전문가는 가격을 맞히면 폭등이 일어날 것이라 농담한다. 등락 값보다 추세에 관심을 두라는 얘기다. 부동산 족집게가 가격이 오른다면 실거주자보다 투기꾼들이 몰리고, 내린다고 하면 갑자기 매물이 몰려 가격 하락세로 금융권이 긴장하게 된다는 부연 설명까지 한다.
최근 산업체와 대학 건설 관련 학생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주제가 디지털 건설이다. 작년에 이어 금년에도 세미나에 많은 인파가 몰렸었다. 기존 기술로는 생존하기 어렵다는 사실 때문으로 해석된다. 정부와 산업체도 다양한 주제로 건설의 디지털 기술개발에 투자하고 있다. 인공지능(AI), 챗GPT, 모듈, 탈 건설현장(OSC), 자동화, 건설정보모델링(BIM), 가상현실/증강현실(VR/AR) 등의 기술이 디지털건설 범위에 속한다. 어느 한 기술의 독립적 역할이 어렵다. 건설기술 및 생산프로세스와 결합되지 않으면 액자 속 그림에 지나지 않는 기술들이다. 디지털화가 미래 건설기술을 좌우하게 될 것만큼은 확실하다.
최근 대기업그룹에 속한 P사가 오랜 기간 기술개발에 매달렸던 모듈공법을 포기하려 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표면적 이유로 시장성과 경제성을 내세웠다. 시장은 경제성이 낮으면 고객 확보가 어렵다. 모듈제작 업체 대부분은 중견이다. 국내 제도는 중소기업 보호를 위해 대기업의 시장침투에 강한 장벽을 쌓고 있다. 국토교통부는 연구개발비 지원과 세제 감면 등 금전적 인센티브와 소음과 내화 등 기준을 완화하겠다 하지만 산업체는 시장이 보장되지 않는 지원만으로는 시장을 활성화하지 못할 것으로 예상한다.
정부와 산업체 모두 디지털 건설기술 개발의 불가피성을 내세우는 3대 이유로 ①생산성 혁신, 안전사고 예방, 성능·품질 향상 ②건설 목적물의 다양한 비정형화 수요 증가 ③인구생태계 변화 등이다. 모듈이나 OSC, 자동화 기술개발에 막대한 예산이 투입된다. 시장이 활성되기 전에 생산되는 목적물의 원가는 당연히 기술개발에 투입된 막대한 자본을 판매원가에 포함한다. 재래식 생산원가에 비해 높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건설의 속성상 보편화 되지 않는 기술을 자신의 사업에 도입하지 않으려는 보수성이 강하다. 미국 정부와 산업체도 이 문제에 공감했다. 국가건설목표를 수립하는 과정에 백악관이 주도해 새로운 기술 상용화를 검증하는 실험현장으로 정부 재정이 투입되는 공공건설을 지목했다. 신기술을 접목하는 건설사업에 예산 배정을 우선시하겠다는 인센티브 정책을 발표했다. 공공건설현장에서 실증한 후 이 기술을 전 현장에 보급하는 전략을 수립했다. 세제 인센티브보다 더 강력한 힘이 작용했음은 물론이다.
건설기술과 산업의 디지털화는 선택보다 시간문제로 보인다. 인구생태계 변화는 인력을 대체하는 기술개발이 아니면 생존을 어렵게 만든다. 경제성 확보는 선택의 문제지만 인구생태계는 선택보다 필연적인 시간문제다. 선택적 눈은 절박함이나 간절함을 볼 수 없다.
2016년에 완공됐던 일본 오사카 인근 축구 전용경기장은 전통적인 건설공법에 비해 기능인력 투입을 80%까지 감축시켰고 공기도 6개월 이상 단축했다. 건설계획 당시 일본은 후쿠시마 피해 지역 복구와 도쿄 올림픽경기장 건설 등에 일본 내 건설인력과 자재, 중장비 등이 동원돼 인력과 자재, 장비 등의 적기 조달이 절박한 상황이었다. 공기 내 준공해야 하는 절박함, 그리고 제한된 예산을 맞춰야 하는 간절함 등이 현장작업을 최소화하는 PC공법, 초정밀 오차관리기술, 가공·조립된 부재를 도착 즉시 설치하는 물류관리 등으로 완공시켰다.
국내 원전건설에도 공기 단축과 숙련인력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수단으로 1980년대부터 다양한 모듈공법 도입, 공종별 프로세스를 IT 기술과 접목해 근로자의 작업손실을 최소화했다. 한때 1만5000명까지 달했던 근로자 수를 약 8000명 수준으로 감소시켜 발주자와 원도급자, 하도급자 모두가 선호하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기능인력 수요를 줄여야 하는 절박함이 문제를 해결했던 것이다.
일본 축구장과 한국원전 건설사례가 증명하듯 신기술이나 공법 개발은 연구실이 아닌 현장에서 실현됐다. 건설현장은 간절함과 절박함이 연구실보다 더 강하다. 연구개발과 실용화 사이에 간격을 두면 시장 활성화가 어려운 게 건설기술이다. 건설의 디지털화는 대학이나 출연연구기관 주도보다 산업체가 주도하는 건설현장에서 답을 찾기를 권고한다. /건설환경종합연구소 산학협력중점 교수
출처 : 대한전문건설신문(https://www.koscaj.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