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학교육 大혁신] ②다차원 설계로 ‘스케일’ 배운다
● 심창수 중앙대 사회기반시스템공학부 교수
대학원 과정인 유한요소 해석
학부서 교육…커리큘럼 변화
학생들 졸업 후 현장투입 즉시
구조해석프로그램 사용 가능
필기시험 없고 실습 위주 교육
구조검토 때 구글지도 등 활용
드론 띄워 지형 스캐닝하기도
첨단솔루션 효용ㆍ한계 체득
구조계산으론 스케일 알기 어려워
시각적 접근 통한 체계적 교육
[대한경제=김태형 기자] “구조해석 프로그램은 바보예요. ‘가비지 인, 가비지 아웃(garbage in, garbage out)’, 모델링을 잘못하거나 입력값을 잘못 넣으면 무조건 틀린 결과가 나옵니다. 하지만 엔지니어라면 단번에 틀렸다는 걸 알아채는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바로 역학이 기본이죠.”
BIM(건설정보모델링), 3D프린터, 드론(Dron), 홀로렌즈(HoloLens) 등 다양한 설루션을 활용해 국내 토목공학 교육분야에 ‘다차원 설계(Multi-Dimensional Design)’를 선도해 온 심창수 중앙대 교수는 <대한경제>와 인터뷰에서 기초 교육과 첨단 교육의 조화를 강조했다.
심 교수는 “건설업은 기본적으로 다단계 체크 구조인데, 소프트웨어 의존성이 높아질수록 그 기능이 약화되고 판단력이 흐려진다”며, “제조업은 쏜살같이 경험기술을 데이터화하고 최적화시켜 손실을 줄이고 제품 성능 개선에 활용한 반면 건설은 경험기술을 내재화한 세대가 현장을 떠나고 빈자리를 비전문가와 외국인력이 대체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건설산업과 대학교육의 미래를 얘기할 때는 “식은땀이 난다”고 했다. “한국에선 ‘더 이상 지을 게 없다’며 건설 투자를 줄이려는 경향이 강한데, 영국과 미국을 반면교사로 기존 인프라 유지관리가 얼마나 크고 중요한지 깨달아야 한다”는 점에서다. 건설 투자를 줄이면 건설산업이 쪼그라들고 신규 엔지니어 공급이 막히면서 나중에 정부가 100조∼200조원을 인프라에 투자해도 그 돈이 결국 다 외국으로 흘러간다는 설명이다.
심 교수는 “인프라 투자가 마무리 단계인 선진국들이 건설엔지니어를 ‘부족 직업군’으로 분류하고 꾸준히 관리하는 이유”라며, “건설은 농업처럼 반드시 유지하고 지켜내야 할 기반 산업으로, 건설인력을 양성하고 관리할 체계를 대학과 산업계가 함께 고민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대학원 과정을 학부서 가르쳐
힘의 흐름을 디자인하는 엔지니어를 키우는 구조공학은 토목공학과에서 과목 수와 교수의 비중이 가장 높다. 과거엔 절반, 지금도 30∼40%를 차지한다. 중앙대 건설환경플랜트공학(토목공학) 전공의 경우 전임 교수진 11명 중 4명이 구조를 가르친다.
심 교수는 “시대가 원하는 인재를 배출하려면 과거보다 가르쳐야 할 범위가 훨씬 늘어난다. 반면 교수 숫자는 줄고 강의시간도 훨씬 줄어서 이제는 선택과 집중이 필요한 시점이 왔다”고 했다.
이는 정역학, 재료역학, 구조역학ⅠㆍⅡ 등 구조 관련 4개 과목을 1∼2과목으로 줄이지 못하면, 시대 변화에 맞는 신설ㆍ융합 과목을 배치할 수 없다는 얘기다. 일례로 중앙대는 구조 분야 교수 4명 중 1명을 카이스트(KAIST) 출신의 센싱(헬스모니터링시스템) 전문가인 박종웅 교수를 영입했다.
심 교수는 “대학에서 커리큘럼을 바꾸려면 내 과목부터 바꿔야 한다”고 덧붙였다. 중앙대의 경우 기존 구조역학Ⅰ은 정정 구조(statically determinate), 구조역학Ⅱ는 부정정 구조(statically indeterminate)를 각각 가르쳤다. 하지만 최근에는 구조역학Ⅰ에서 정정ㆍ부정정 구조를 한꺼번에 다루고, 구조역학Ⅱ에선 대학원 과정이던 유한요소 해석(finite element analysis)을 끌어와 가르친다.
정정 구조는 힘의 평형을 이루는 안정적인 구조물에 딱 알맞는 구조이고, 부정정 구조는 더 안정적이고 튼튼하지만 구조 해석할 때 다소 난이도가 있는 구조를 말한다. 유한요소 해석은 복잡하고 거대한 구조를 잘게 쪼개 수치적으로 해석해주는 가상의 모델이다. 구조해석프로그램을 활용해 세계 최장 현수교인 차나칼레 대교(3.6㎞)를 주요 포인트만 뽑아서 외력에 의한 변위와 응력을 계산해서 전체 구조설계의 적정성을 판단할 때 쓰인다.
심 교수는 “학생들이 졸업 후 건설현장에 투입되면 구조해석프로그램을 바로 써야 하기 때문에 대학원 과정을 학부로 끌어왔다”며, “다만, 어떤 모델과 소프트웨어를 쓰느냐에 따라 결과가 판이하게 달라지는지를 직접 체험하고 소프트웨어만 너무 신뢰하지 말라는 것을 가르친다”고 언급했다.
無시험, 강의ㆍ발표는 영어로
심 교수가 이끄는 다차원 설계 교육은 유별나다. 4학년 과정으로 필기 시험이 없고, 모든 강의와 발표를 영어로 진행한다. 계산 위주의 이론교육 대신 실습 위주인데다, 건설시장의 70%가 해외라는 점을 감안했다는 설명이다.
심 교수는 “설계ㆍ시공사가 어떤 인재를 원할까. 콘크리트를 비비고 교각 세우는 일보다 80∼90%가 관리 업무”라며, “그렇다고 ‘토목의 꽃’인 교량을 모르는 학생들을 배출할 수도 없어서 이 과정을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수강생들은 실제 하천의 교량을 3차원(3D)으로 설계하고, 구조검토를 수행한 뒤 그 결과를 직접 발표한다. 가령 성남시 탄천의 지형정보 위에 교량을 디자인하고, 교량의 주요요소인 거더ㆍ기둥ㆍ교각 중 하나를 구조검토하는 식이다. 학생들은 구글 지도를 활용하거나 국토지리원 3D 지형정보를 가져와서 쓰고, 때론 드론을 직접 띄워서 지형 스캐닝을 하기도 한다.
교량 디자인을 할 때는 게임을 하듯이 직관적으로 모델링이 가능한 인프라웍스를, 구조검토 시에는 마이다스 시빌과 같은 구조해석 소프트웨어를 사용한다. 과제 발표를 할 때는 모형을 3D 프린터로 만들 수 있고, 홀로렌즈와 같은 혼합현실(MR) 장비를 쓸 수도 있다. MR은 현실과 차단된 가상의 공간에서 만나는 가상현실(VR)과 실제 공간에 가상 요소를 덧씌우는 증강현실(AR)을 합친 개념으로, 사람의 손동작이나 음성, 시선으로 조작할 수 있는 가상 영상을 구현해준다.
학생들이 발표과제를 준비하면서 첨단 설루션을 직접 써보고 그 효용과 한계를 자연스럽게 체험할 수 있도록 커리큘럼을 짰다.
심 교수는 홀로렌즈 1ㆍ2 모델을 출시 초기 미국 현지에서 사비로 구입해 수업에서 활발히 쓰고 있다. 3D 프린터와 드론도 구매해 학생들이 수업 과정에서 모델링과 스캐닝에 직접 활용하고 있다.
심 교수는 “구조계산만 하다보면 수치만 알고, 구조물의 스케일을 모르는 경우가 많다”며, “구조를 디자인할 때 수치적으로 접근할 뿐 아니라 시각적으로 접근할 수 있도록 체계적인 구조 교육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심창수 교수는?
서울대 토목공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ㆍ박사 학위를 받은 뒤 2000년 중앙대 사회기반시스템공학부 교수로 임용됐다. 30대 ‘토종박사’로는 드물게 2006년(37세) 세계적 인명사전 ‘마르키스 후즈후’에 이름을 올렸다. 철골과 콘크리트 합성 구조의 기본 이론인 합성작용에 관한 논문으로 조립식 교량의 연결부 연구 분야를 개척한 공로다.
한국BIM학회 창립멤버로 회장을 역임했고, 현재 한국강구조학회 부회장을 맡고 있다. 국가 R&D인 스마트건설기술개발사업단의 ‘프리팹 교량에 대한 디지털엔지니어링 모델 개발’ 연구책임자이고, 교량 모델링 분야의 국제 피어리뷰(peer reviewㆍ동료평가) 매거진 ‘e-BriM’의 편집진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김태형 기자
대한경제신문(www.d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