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건설기술은 화려하게 소개되지만, 정작 현장에서는 그 효용을 체감하기 어렵다는 목소리가 크다. “태블릿 보급이 확대됐지만 여전히 종이 서류가 기본”이라는 현장의 반응은 기술과 현실 사이의 간극을 여실히 드러낸다.
실제 지난 20년간 국내 건설산업의 생산성 향상률은 전 산업에 걸쳐 가장 낮은 수준이며, 디지털화 또한 미흡하다. 정부와 기업의 노력이 적지 않음에도 체감되지 않는 이유는 기술이 본사의 관리체계에 머물고 있고 현장의 업무 방식 자체를 바꾸지 못했기 때문이란 게 필자의 판단이다.
스마트건설의 시작점은 새로운 기술 도입이 아니라 낡은 관행의 제거에 있다. 반복적이고 비효율적인 수작업을 줄이고, 이중화된 문서 처리 구조를 없애야 비로소 디지털 전환(DX)이 시작된다. 업무를 더 쉽게 만드는 방향에서 기술은 힘을 발휘한다. 일부 기업은 품질관리 자동화 시스템을 통해 문서 일원화와 페이퍼리스 환경을 조성하며 긍정적인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기술 개발의 방향성 또한 바뀌어야 한다. ‘무엇이 불편한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해 실무자의 언어로 문제를 정의하고 현장의 수요를 기술 설계에 반영해야 한다. 대우건설에서 개발한 계약서 분석 AI(인공지능)인 ‘바로답’이나, 이메일 보조 AI인 ‘바로레터’는 이러한 수요자적 접근이 만들어낸 성과다. 기술은 톱다운이 아니라 현장의 바텀업 흐름과 결합할 때 효과를 발휘한다.
나아가 조직은 데이터 중심 체계로 전환돼야 한다. 기술은 정보의 흐름과 연결성을 전제로 하기에 분절된 조직 구조는 기술의 작동을 저해한다. BIM(건설정보모델링), IoT(사물인터넷), 드론 등 부서별 기술 자산을 통합ㆍ공유하고 경영진과 실무자가 정보를 함께 읽고 판단하는 구조가 필요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지속과 정착이다. 스마트건설은 개발 기술을 한 번 시연하는 것이 아니라 도입 이후 유지보수, 교육, 데이터 품질 관리까지 포함한 긴 호흡의 여정이다. 연장선상에서 경영진은 ‘도입한 기술을 어떻게 지속 가능하게 만들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결국 스마트건설의 성공은 기술이 아닌 사람과 조직의 혁신에 달려 있다. 현장의 불편을 진심으로 해결하려는 경영의 결단, 이를 뒷받침할 문화와 실행 구조가 필요하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새로운 기술보다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용기다. “지금 우리가 반드시 없애야 할 불편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응답하는 기업만이, 스마트건설을 현실로 만들 수 있다.
이 질문은 단순한 문제제기가 아니라 기업 경영과 조직문화 전반을 뒤흔드는 근본적 성찰의 출발점이다. 건설업은 긴 시간 동안 대규모 자본과 인력이 복잡하게 얽힌 산업으로서 변화에 대한 저항과 관성이 클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럴수록 변화는 ‘기술’보다 ‘사람’에서부터 시작돼야 한다. 변화는 현장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그 언어로 기술을 번역할 수 있는 리더십에서 나온다.
스마트건설은 단일 부서의 프로젝트가 아닌 회사 전체의 일하는 방식과 문화, 판단 방식의 전환을 의미한다. 현장에서는 불편을 줄이고 본사에서는 이 변화가 지속될 수 있도록 전략과 자원을 배분해야 한다. 또한, 경영진은 이러한 변화의 흐름을 단기 성과가 아닌 장기 구조 혁신의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
건설산업이 직면한 저성장과 고비용 구조를 극복하기 위해, 기술 도입을 넘어 조직 운영과 문화에 이르기까지 총체적인 질문을 던져야 할 때다.
출처 : 대한경제신문(www.d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