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산업 전통적 특성 깨는 게 디지털화…메이콘 전환 절실
전통적 산업에 안주한 건설
건설사들, 디지털 변화 초보 수준
표준화 정보화 어렵고 한계 '핑계'
새 비즈니스 모델, 스스로 차단막
이달 초 서울 소재 한 대학교의 건축공학과 교수와 저녁모임을 한 적이 있다. 이 자리에서 건축공학과 교수는 챗GPT의 사용경험을 말하며 세상이 놀라울 정도로 바뀌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건축공학과 교수를 하고 있는 게 천만다행”이라며 농담을 던졌다. 같은 대학 전자공학과 교수들과 친분이 있어 대화할 기회가 많은데, 전자공학과 교수들은 강의교재를 만드는 데 엄청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한다. 기술이 하루가 다르게 변하다보니 수시로 업데이트를 해야 하기 때문이란다. 반면 건축공학과만 해도 5년, 10년전 교재로 강의를 해도 크게 문제되는 게 없으니 얼마나 다행이냐는 것이다. 그러면서 한마디 덧붙였다. “전자공학과 교수의 말이 지금 하고 있는 강의내용들도 학생들이 졸업할 때쯤에는 쓸모없는 지식이 된다고 하네요.”

생산성 고부가치 창출은 이미 고전
탄소중립 안전사고 예측에 적용
BIM ECI 공장화건설 3대 융합
스마트 기술로 진화해야 완전체
세상의 바뀜에 정신이 없다. AI 알파고가 바둑황제 이세돌을 꺾으며 전 세계에 충격을 준게 몇년전인데, 이제는 AI와 실시간 대화가 가능한 챗GPT가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미국 오픈AI가 개발한 대화형 인공지능인 챗GPT는 지난해 11월30일 출시된 이후 MBA와 로스쿨, 의사면허 시험까지 합격하며 세상을 놀라게 했다.
챗GPT의 ‘챗’은 ‘대화’를 의미하고 GPT는 ‘사전 훈련된 생성 변환기’를 뜻한다. ‘생성형 AI’로도 불리는데, 기존 AI보다 수백배 이상의 데이터를 학습해 인간처럼 종합적 추론이 가능한 ‘초거대 AI’를 기반으로 사용자의 요구에 따라 다른 결과를 생성하는 서비스다. 전문가들은 높은 전문성이 필요한 일자리를 AI가 완전히 대체하기는 어렵겠지만 단순 사무직 등 소위 ‘중간 일자리’는 빨리 위협을 받을 것으로 내다봤다. AI의 발전은 산업 전 영역에서 디지털 전환을 가속화시키고 있다. IoT(사물인터넷), 클라우드 등 전방위적인 디지털 기술들과 함께 산업 내 비즈니스 창출을 촉발시키고 있다.
올 초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23’에서 주목받은 기업이 세계 1위 농기계업체인 존디어다. 이 회사는 디지털 전환을 통해 농기계 판매기업에서 솔루션 판매기업으로 변신에 성공한 사례다. 트렉터에 AI기술을 접목해 복잡도가 낮은 농지에서 완벽한 자율주행을 이뤄냈다. AI의 도움으로 파종 후 정확히 비료를 뿌려 비료 살포량의 60%를 줄였다. 농기계의 활용도를 높이기 위해 작물 정보를 모으고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추천 작물이나 파종 시기 등을 알려주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 회사의 트렉터는 ‘CES 2023’ 혁신상을 수상했다.
-건설사 대다수 단순 디지털화 수준
세상은 빠르게 돌아가는데 우리 건설산업은 디지털 전환은 고사하고 디지털화조차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원장 이충재)은 지난해 10월 우리 건설업체들의 디지털화 정도를 보여주는 의미있는 보고서를 내놨다. 김우영 연구위원이 작성한 ‘건설산업의 디지털 전환 동향과 대응방향 보고서’다. 이 보고서는 설문지가 회수된 25개사를 분석해 디저털화 정도를 분석했다.
시공능력평가순위 1∼10위에 해당하는 업체들은 상대적으로 디지털화 수준이 높기는 하지만 여전히 업무 디지털화에 한계가 있고 디지털 전환에 있어서도 제한된 가능성만을 보여주고 있다는 평가다. 실무자들 가운데 절반 이상이 여전히 엑셀 등 범용 소프트웨어를 이용해 업무처리를 하고 있고 PMIS(건설정보관리시스템) 등 업무 프로세스가 녹아 있는 전용 관리 시스템의 사용률은 20%에도 미치지 못한다. 대부분 BIM(건설정보모델링)을 사용하고 있는데 설계오류 검토와 시공계획 검토, 시공오차 확인, 물량산출, 공정 시뮬레이션 등의 업무에 활용하고 있다.
대부분 기업이 MIS(경영정보시스템)와 PMIS를 보유하고 있으며 실무자들의 업무에 따라 차이가 있으나 상황에 따라서 각 시스템을 사용하고 있다. 스마트 건설기술 적용에 있어서 출역관리에 바코드, RFID(무선인식), 생체인식 기술 등이 활용되고 있지만 자재관리에 바코드나 RFID를 적용하는 업체는 상대적으로 적다. 대부분의 업체는 현장 모니터링이나 측량 목적으로 드론과 3D스캐너를 사용하고 있으며 현장관리를 위한 태블릿 등 모바일 장비를 활용한다.
일부 기업의 경우 스마트 센서나 인공지능 CCTV를 사용하고 있으며 가상현실 기술을 활용하는 사례도 있다. 여기에 대부분 기업은 스마트홈을 주택에 적용하고 있으며 인텔리전트 빌딩과 스마트 도시, 스마트 주차관리시스템, 스마트 도로, 스마트 헬스케어 등을 적용하는 기업도 있다.
11∼30위권 업체들도 1∼10위권 업체와 큰 차이가 나지 않는 수준의 디지털화 수준을 보인다. 하지만 30위권 이하의 업체들은 상대적으로 매우 낮은 디지털화 수준을 보여준다. 전체 업무의 70% 이상을 엑셀 등 범용 소프트웨어를 사용해 데이터 처리를 하고 있으며 ERP(전사적자원관리)나 PMIS 등을 사용하는 비율이 20%가 안된다.
이 같은 분석을 통한 전반적인 평가는 우리나라 건설산업의 디지털 전환 수준은 정보 디지털화 수준에 머물고 있다는 것이다. 일반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 30위권 내 기업들의 전산화가 상당히 진척된 것으로 이해될 수 있지만 디지털 전환 관점에서 보면 여전히 정보 디지털화 1단계인 단순 디지털화에 머물고 있는 기업들도 적지 않다는 것이다.
김우영 연구위원은 보고서에서 “디지털 전환은 궁극적으로 새로운 사업영역으로의 확장에 그 목적이 있는데, 건설산업은 명확한 자아 정체성으로 인해 사업영역의 확장이 어렵다는 문제가 있다”고 설명했다. 수천년의 역사를 가진 건설산업은 그 주체들의 전문성과 업무영역이 명확하고 수주 아니면 개발사업 영역으로 나뉜 수익창출 방식도 분명하다는 것이다.
-산업적 특성 벗는게 급선무
우리 건설산업이 디지털 전환은 고사하고 디지털화조차 기대만큼의 진척을 보여주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건설산업은 전통적인 산업적 특성을 갖고 있다. 건설현장은 외부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따라서 각 공종 간 작업시간과 순서가 상황에 따라 달라질 가능성이 높다. 완벽한 통제가 불가능한 불확실성 속에서 작업을 수행해야 한다. 게다가 같은 사업 내에서도 작업 시점마다 여건이 달라질 수 있어 같은 작업을 같은 방식으로 할 수 있다는 보장도 없다.
이런 산업적 특성은 그동안 디지털화 부진의 좋은 핑곗거리였다. 건설산업은 제조업과 달라서 표준화와 정보화를 통한 효율성 향상이 어렵다는 것이다. 하지만 건설산업의 디지털화는 늦춰서는 안되는 시대적인 요구가 됐다. 디지털화를 통한 생산성 향상과 고부가가치 창출은 이미 고전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의 시행으로 한층 강화된 안전관리와 국제적 이슈인 탄소배출규제에 부응하기 위해서도 디지털 기술의 활용이 절대적이다.
건설업 사고사망자는 주로 떨어짐, 물체에 맞음, 부딪힘, 화재 등에서 발생한다. 즉 자연재해나 장비결함 등 환경적인 요인보다는 작업 숙련도 미숙이나 안전장비 미사용 등 사람의 과실에 의해 발생하는 게 많다. 해외 선진 건설사들은 이미 AI를 통해 건설현장에서 발생하는 각종 사고 등의 빅데이터를 수립하고 분석해 안전사고의 20%를 예측하는 결과를 얻었다. BIM의 활용으로 건설현장의 다양한 위험 상황을 예측할 수 있고 로봇과 드론은 건설현장에서 발생하는 산업재해를 직ㆍ간접적으로 줄이는 효과를 보인다.
정부는 지난 2021년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8년 대비 40% 감축하고 2050년에는 순배출량 제로(0)를 달성하는 탄소중립목표를 확정했다. 그리고 탄소중립ㆍ녹색성장기본법을 제정ㆍ공포하고 구체적인 절차를 담은 시행령까지 만들었다. 친환경 건설이 시대적 요구로 떠오른 것이다. BIM을 비롯해 OSC(공장제작건설), 3D 프린팅 등을 적용하면 건설과정의 불필요한 가설재 설치를 줄일 수 있다. 초기부터 최적화된 계획을 통해 불필요한 낭비를 없애면서 탄소배출도 감소시키는 것이다.
디지털화의 장벽이 산업적 특성 때문이라고 한다면 이런 전통적인 산업적 특성을 깨나가는 것이 디지털화와 더 나아가 디지털 전환의 성공요소다. 디지털화는 단일 기업보다 전체 산업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하는 것이다. 불확실성이 높은 건설산업의 특성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건설환경을 제조업과 같은 공장화 개념으로 전환해야 한다. 현재 택트공법이나 로보틱스, 모듈러, OSC 등의 접근이 시도되고 있는데, 이를 보다 확대해 표준화된 프로세스를 구축해야 한다.
궁극적으로는 소프트웨어(BIM), 프로세스(ECIㆍ설계단계에 시공사가 함께 참여하는 발주방식), 하드웨어(공장화 건설) 등 3가지 요소의 융합을 근간으로 해 그 위에 증강현실 및 가상현실, 3D 스캐너, IoT 센서 등 다양한 스마트 건설기술 요소들을 활용하는 체계로 발전하는 것이 디지털화의 완성이다. 이런 기반이 구축됐을 때 디지털 전환을 통한 비즈니스의 창출도 가능하다.
권혁용 기자
출처:대한경제신문